[활동이야기]

[형제복지원 국민법정] 늦은 후기...(배심원들의 이야기입니다)

  • 2014.11.06 17: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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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국민재판 배심원들의 참여 동기

 

평상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지는 않았지만 소소하하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국가의 공적 행위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관계와 그 수인가능성과 인권침해에 대한 보상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손해에 대한 보상의 범위와 방법, 그리고 치유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형제복지원의 자세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치 못했고 또한 배심원이 되는데 있어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대한 약간의 걱정이 있어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만약 사실관계 파악이 미리 필요하다면 주말간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소개 글에서 본 바는 법적쟁점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저의 관심사와 관련된 문제라 생각되어서 덥석 신청케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94년 음성꽃동네를 처음 방문한 이후 약 5년간 일 년에 한 달 이상 꽃동네에서 숙식하며 소위 자원봉사라는 것을 하면서 점차 복지시설의 한계와 문제점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선생이 되어 돌아간 모교에서 후배이자 제자인 의대생들을 데리고 다시 꽃동네를 가란 지시(?)를 받고 과연 우리 학생들이 거대 복지시설 꽃동네를 아무 준비없이 방문하게 해도 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탈시설 운동을 하는 발바닥을 알게 되고 강의도 요청해 들으며 자연히 회원이 되었습니다. 발바닥의 활동을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게 되었고 박인근이라는 개인도 문제였지만 얼렁뚱땅 그에게 면죄부를 준 이 나라 정부와 그 도구로 악용된 사법체계도 큰 문제였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국민법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명하여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또 이런 자리를 통해서라도 정의가 드러나길 바라며 참가를 신청하였습니다.

바쁘신 중에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점 감사드리고 월요일에 뵐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4월이었습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19기 자원활동가로 염형국 변호사님을 도와 일을 하던 중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자료들을 문서화 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맡은 부분은 85~87년 사이의 형제복지원 입 퇴원 명부와 사망자 명부를 엑셀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입 퇴원 명부 수와 사망자 수에 놀랐었고, 두 번째는 병원 및 국가 기관의 직인이 찍혀있었다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서명을 하고 직인을 찍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관심만 보였더라도 그렇게 많은 비극이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형제복지원 사건은 개인의 일탈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닌, 국가의 비호와 권력층의 의도적 외면 속에 싹을 틔우고 몰염치한 개인들의 탐욕이 키워낸 구조적 악의 열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는데요, 단순반복작업이라 지쳐갈 때 즈음, 사망자 명부에 있던 성별 : , 나이 : 1세 추정, 사망원인 : 영양실조, 매장형태 : 가매장을 읽고서, 이 짧은 한 줄에 담겨있는 당시의 비극이 머리에 그려져 한동안 침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슬픔 속에 스러져간 생명들이 영원히 편히 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죽은 자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그러한 비극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사명감에 힘을 내어 작업을 마무리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원활동 기간이 끝나고 우연히 형제복지원사건 관련 모의법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난 4월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각오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이번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번 모의법정 배심원으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심층 이해와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조치, 재발방지 대책 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SBS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실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피해자들이 지금도 고통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동안 피해자들은 얼마나 고통 받으면서 살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20대입니다. 제가 배심원이 된다면 법적인 지식은 없지만 상식적인 판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인터넷 언론 <일다> 기자로서 약 6년간 재직하였고, 그 과정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퇴사 후, 몇 가지 구술기록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 중 하나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의 구술기록입니다.

피해자와 깊이 있는 인터뷰를 가지면서 그의 지난 삶에 형제복지원의 경험이 미친 영향이 곳곳에 스며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시설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이 사건 또한 과거사 진상규명의 차원으로 머물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다 깊이 형제복지원 문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싶었으며, 국민법정 배심원 참여가 그 기회 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의법정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절차와 똑같이 진행되는 곳에서, 배심원의 입장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시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981년생인 저는 성인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에서 떨어져 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제가 자라는 동안 수없이 일어났지만, 저와 제 가족은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창 가족의 사랑 속에 자라고 있을 때 저와 같은 나이였을 이들이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차갑고 세상과 차단된 어디론가 끌려가 배고픔과 폭력을 넘어 죽음과 싸워야 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고 괴로웠습니다. 같은 대한민국을 살아내는 국민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모의법정에 모인 분들과 머리와 마음을 맞대어 그 숙제를 최선을 다해 풀어내고 싶습니다.

 

얼마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오던 것이 형제복지원 사건이었는데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막상 처음엔 복지원재단의 박인근원장이 추악하다고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국가 또한 크게 관여하고 있었고 그에 희생되어야만 했던 수많은 국민이 있었더군요. 복지시설이라는 명목하에 무차별 폭행은 물론이거니와 노동력, 국가보조금의 갈취 하물며 성폭행도 서슴치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악랄한 그가 받은 형벌은 고작 26개월이었습니다. 1980년대 주먹구구식으로 결과를 위해 추진된 국가사업으로 거리의 부랑인들을 복지원으로 데려와서는 복지는 커녕 감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무겁고 정확한 법적절차를 받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국가가 이중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니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분명 정확한 재수사가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관심이 있던 찰나에 배심원 모집을 보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배심원에 선정이 안되더라도 부디 의식이 깨어있는 시민들을 모집하여 고통받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꼭 풀어주시길 간곡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됨됨이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사람을 대하는 태도, 대등한 관계맺음은 인권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형제복지원이라는 공간은 한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어렵게 했고, 서로를 보듬고 살피는 사람살이를 왜곡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서로의 무관심, 질서유지라는 사회적, 국가적 폭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록 이 사건을 명명백백히 드러내고 성찰하는 일, 그리고 끊임없는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라도 제가 할 수 있는 형태로 참여하고자 배심원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한 학생으로, 예전부터 국민참여재판에 관심이 많았으며, 기회만 된다면 배심원으로 언제든지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신문과 판례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눈으로 재판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특히나 형제복지원 사건은 예전부터 논란이 되어왔으나, 사실 국민들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진 사안인듯 합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서 다시금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며,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마당에서 국민법정은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한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으려하고,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도, 사과도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한들, 피해자의 지나버린 인생을 어떻게 보상해 줄지도 막막할 따름입니다. 가해자를 책정해서 그 사람에게 책임을 지운다 한들, 이미 지난 일이라 치부할 것이고, 진정성 있는 사과조차 없을 것 같아서 더욱 마음만 아픕니다. 또한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대로 된 책임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정치의 논리에 따라서 쉬쉬되다가, 학림사건, 부림사건처럼 20년이 다 지나서 무죄판결을 받고, 그들의 죄없음을,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준다고 한들,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 될 것이고, 잘못한 사람들은 무슨일 있었냐는 듯이 떳떳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법정을 통해 다시금 국민들에게 환기를 시키고, 자극을 준다면, 이런 인권침해 사례를 조금은 줄여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 의미를 두고 참여하고자 합니다.

 

 

그날, 그곳에 내가 있었다면

 

임선희(형제복지원 국민법정 배심원 대표)

 

지난 928일 열렸던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의 배심원으로 참여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글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형제복지원 사건과 실제 피해자들이 참석한 재판을 통해 접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그 느낌이 달랐고, 비록 모의였지만 처음 접해본 국민참여재판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이후 많은 생각이 들었기에 개인적으로라도 정리가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글은 국민참여재판 소감문이 아니기 때문에, 평의 도중 배심원들이 겪었던 몇 가지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재판 제도 자체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따로 적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누구든 기회가 있다면 한번쯤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해 보시길 권하고 싶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얼마 전부터 딱 쥐꼬리만큼 후원을 하고 있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하 발바닥 행동)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사건의 실체가 조금이나마 세상에 드러난 것이 86-87년이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나는 전두환이 지나간다는 차도 변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차가 지나간다는 소식이 오면 태극기를 흔들고, 서울을 50미터나 침수시킬 수 있다는 금강산댐 수공을 막아내는 평화의 댐을 짓겠다는 정부를 돕기 위해 전교생이 모금한 돈을 방송국에 대표로 전달했던 국민학생이었다. 내가 너무 어려서 그 사건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당시 성인이었다 해도 정권 차원에서 수사를 방해했던 사건의 전모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인식조차 되지 못했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발바닥 행동이 이메일로 전해주는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형제복지원대책위) 활동 소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살아남은 아이를 구해서 읽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등 나름대로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하릴없이 그저 지켜보고 있던 차에 형제복지원 국민법정 배심원 모집 공고를 접하게 되었고, 주저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지원동기에도 썼듯이,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는 박인근이라는 개인 뿐 아니라 얼렁뚱땅 그에게 면죄부를 준 정권과 그 도구로 악용된 사법체계도 큰 문제였다고 생각해왔었고, 또한 국민법정이라는 계기를 통해 너무나 늦었지만 일부나마 정의가 세상에 드러나고 아직 끝나지 않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기를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피해자들 중 직접 출석했던 분들이 증언한 내용은 책과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이야기들과 그 내용은 대동소이했지만, 피해자의 육성으로 전달되면서 그 잔인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모든 증언이 다 몸서리 쳐질 만큼 끔찍했기 때문에 오히려 공감도 상상도 쉽지 않았다. 피해자들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고, 변호인 측도 먼 기억에 의지한 증언의 부정확함과 불확실함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피해자들을 모독하고 옛 상처를 더욱 아프게 후벼 파곤 하였다. 변호인의 거듭된 의혹 제기에, 모의재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피해자 증인의 눈빛에 한 순간 노기가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들 보다 나를, 최대한 객관적이고자 노력했던 배심원을 피해자의 입장으로 순식간에 끌고 들어갔던 것은 피해자들이 강제로 끌려갔던 경위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들이 어처구니없이 끌려들어간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이 끔찍한 일이 내게도 벌어질 수 있었다는 깨달음이 왔던 것이다. 나는 어려서 두 번이나 길을 잃었었는데, 당시 내가 만약 부산에 살고 있었다면 얼마든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글자그대로 모골이 송연해지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쉬운 재판은 아니었겠지만, 배심원이라는 위치 상, 쏟아지는 각종 정보와 감정들을 모두 받아내느라 힘겨웠던 재판이 끝나고, 11명의 배심원들은 평의 과정에 돌입하였다. 전체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평의 시간이 20분 내외로 극히 제한되면서 배심원 간 충분한 토론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 토론을 더 어렵게 한 것은 배심원들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에서 제공된 정보 이외의 것들까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 결과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진짜 국민참여재판이었다면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않았을 사람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평의 토론은 배심원들의 감정적 치우침이 아니라 그 반대인, 지나친 자기검열로 인해 어려움에 봉착했다. 시간도 없지만 평의에 도움도 안 되지 않느냐며 서로 이름도 성도 묻지 않았던 이 배심원들은 자신들이 내리는 판단이 감정에 치우치는 것을 우려해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점검하고 또 고민하는, 포청천 같은 판사의 꿈속에서나 만날법한 분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박인근과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주저 없이 외치고 싶고, 그게 마땅하지 않느냐 던 이 배심원들은 오로지 법에 근거하여 죄의 유무를 판단해야하는 본분을 철저히 견지하였고, 증거가 조금이라도 불충분하다고 생각되거나 당시 실정법을 위반했다고는 할 수 없는 비 인륜적 행위에 대해서 만장일치 유죄 평결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재판부보다 자못 너그러워 보이는 평결을 내놓은 배심원들에게 피해자들께서 서운하지 않으셨길, 늦었지만 바래본다.

 

이번 국민법정 참관 정리의 마무리는 피고 박인권 역할을 맡아 열연했던, 부산 출신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44기 권재호 연수생의 소감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갈음하고 싶다 - “우리의 무관심이 과거 형제복지원과 같은 인권유린 사건을 만들어 냈고 앞으로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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