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실습을 시작하며>

  • 2019.07.18 16: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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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실습을 시작하며>
- 작성자: 2019년 여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실습생 이정하

발바닥을 경험하고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것들을 다듬어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동안 발바닥을 지지해오신 회원들께 존경의 마음을 담아 아름다운 글귀를 선사하고 싶지만, 제 인생 속의 나침반 같은 이 시간들을 ‘날 것’으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올해로 장애인복지 경력 12년차인 사회복지사입니다. 국문학과를 전공하고 시인을 따라 간 시민단체에서 사회복지를 만났습니다. 좋은 사회복지를 만나면 가난한 사람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람들의 일상이 행복한 사회복지를 해야겠다고 실천해왔습니다.

저는 더 열심히 사회복지 하고 싶어서 발바닥에 왔지만 실습을 시작하고 난지 얼마 안 되어 참여한 발바닥의 ‘다크투어’에서 제 다짐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인권유린의 현장, 장항 수심원에 가는 동안 사람들을 가두고 학대한 사람들을 욕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곳에 가족을 보낸 사람들이 놀랍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더 황당했던 것은 인권유린의 현장이 알려진 이후에도 그런 시설에 보내고 싶어하는 가족들의 문의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나도 그곳에 내가 아는 사람을 보내고 싶다며...

끔찍한 현장은 서류며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고, 전 그 끔찍함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자연스레 흩어진 서류 속에서 비리와 학대의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정갈한 정자체로 꼼꼼하게 쓰여진 생활 일지와 오늘날과 너무나 같은 형태의 서류들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게는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은빛 물고기들이 수면위로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섬의 자그마한 시설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더러운 서류들을 뒤지는 동안 저는 아마 ‘그때의 시설과 지금은 다르다’, ‘차별하는 이들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사회복지현장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잘 한 사회복지인들 무슨 의미인가? 그들이 원한 일상이 아닌데 말입니다.

저에게는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가족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전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삼청교육대 얘기는 금기사항이었습니다.

그 분 때문에 괴로웠던 기나긴 나날 동안 저를 비롯한 모든 가족은 그 분을 줄곧 원망했습니다. 왜 제대로 살지 않는 걸까? 왜 가족들을 괴롭히는 걸까? 안보고 살면 좋겠다. 난 그 분과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안 보고 사는 지금이 좋다는 인식조차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 나라고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하지 않았다 할 수 있나?

지금은 아무도 없는 수심원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그 곳엔 사람이 살고 있었더랬습니다.

신체를 정리하는 것이 하루일과인 그곳에서 가지런히 빚을 벽에 걸어두고 오롯히 하루를 존재만으로 버텨간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가둬두고 학대하면서 운영자들은 소방시설, 잠금장치를 열심히 설치하고 지독하게 ‘안전’을 곳곳에 표시하고 강조했습니다. 무엇이 ‘안전’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수심원 안을 둘러보는 동안 혼자 남아 잠깐 길을 잃었습니다. 생전 처음 온 곳에서 익숙한 것을 찾아나갔습니다. 먼 발치에서 들리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만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가느다란 끈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만약 수심원에서 붙잡고 나온 소리가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비명소리였다면 어땠을까요? 라며 활동가가 던진 질문은 나를 침묵하게 했습니다.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가족을 비인간화 시키고 힘들어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을까? 사회와 국가는 우리 가족에게 어떤 목소리를 들려주었는가?

교도소, 수용소, 그 말 안에 박힌 굳은 낙인들은 30살이 넘어선 이제야 제 입을 열게 했습니다. 이제 열게 된 입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정리되지 않지만 실습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수심원에서 발견한 나침반을 꼭 붙잡고 싶다는 소망뿐입니다.

그 소망을 잘 붙잡을 수 있도록 발바닥의 회원분들께 작은 응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부탁드리며 제 날 것들을 꺼내놓았습니다. 날 것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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