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이야기]

H를 만나고

  • 2011.04.05 0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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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발바닥효정입니다.

조금전까지 H씨와 만나고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컴터앞에 눌러 앉고 말았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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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애인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는 기초생활수급제도와 관련한 개정운동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부양의무와 최저생계비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발바닥이 탈시설을 주요 화두로 운동하는 만큼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로 나오는데에

과정과 기반에 대한 고민이 한창입니다.

 

이제까지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은

"우연"에 의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괜찮은 사람'을 '적절한 시기에 잘 만나는 것'이 시설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이었잖아요.

작년부터 진행한 주거복지사업(탈시설운동)은

자립의 또 다른 물고를 트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그 중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문제는 기초생활수급과 관련 된 문제입니다.

국가는 1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않는 경우 생계, 주거, 의료, 주거비용을 지급하고 있는데요.

 

시설에서 한 장애인이 나오는데 기초생활수급제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장애인은 시설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서 거주하고 있지만,

퇴소를 하는 과정에서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조사가 진행됩니다.

부모나 자녀에게 일정의 소득이 있는 경우

수급에서 탈락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장애인은 시설에서 나와도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종종 자립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또 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개인에게 지급되는 돈은 장애수당(장애연금)정도이기 때문에

몫돈을 마련해서 자립하는 경우도 적어
주거를 마련하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수급비는 턱없이 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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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4/6(수) 오전에 국회에서

부양의무제 피해 당사자 증언대회가 진행되는데요.

 

조금전까지 이 증언대회에 참가하는 당사자분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왔습니다.

H는 아홉살에 시설에 입소해서 28년을 생활했답니다.

시설에 입소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긴 시간 시설에 있을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고.

 

그는 13년동안 자립을 준비했는데,

주거복지사업에 참가자로 선정되면서 이 긴 시간의 준비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주거복지사업이 아닌 서울시체험홈으로 퇴소를 해야 했는데요.

애초 자립에 대한 어머니의 반대가 그에겐 가장 큰 걱정거리였지만

정작 더 큰 장벽은 부양의무제에 있었습니다. 

 

3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는 꼭 3일 뒤 시설에 입소했습니다.

가족들은 생활고를 피할 수 없었고, H씨의 어머니는 형제들을 부양하기 위해

고생이 많으셨답니다.

그녀가 30년동안 그렇게 노력하고, 몇 년 전 대출을 받아서 집 한 채를 마련하셨는데,

H는 어머니의 이 집때문에 수급에서 탈락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건강이 악화되어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고,

얼마의 연금과 결혼한 자녀들에게 받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계시는데.

단 한 채 남아있는 어머니의 집이, 그에겐 수급탈락의 조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체험홈을 선택한 이유는 공과금이 들지 않아서였지만,

규율이 엄격해 자립이지만 반(半)시설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또 공과금은 내지 않더라도

생활비는 자신의 몫이기 때문에 여러 친척들에게 얼마씩 받는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오늘 인터뷰를 하기위해 그의 집을 찾아가는 길, 그래도 처음 집에 찾아가는 거라서 빵을 좀 사갔는데,

쌀값이 너무 비싸서 떡이랑 빵은 냉동실에 얼려놓고 아껴 먹어야 한다더군요.

그는 이런 저런 생활비를 내고 나면 자기 손으로 꼭 필요한 약도, 그 좋아하는 아이스림도

입에 넣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끝자락,

그는 반 농으로 반 진으로

자신이 제 2의 전태일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어머니와 30년을 떨어져 살았고, 어쩌다 생긴 돈으로 브로치를 선물해 드려도

"네 용돈이나 하지 왜 이런 걸 사왔냐"며 그마저 받지 않으시는 어머니에게

아파트까지 내어놓으라 말할 순 없다며.

자신이 죽으면 제도는 바뀌지 않아도 사람들이 관심은 갖지 않겠느냐고...

 

그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좀 먹먹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MB정권 하에서 우리의 싸움은 너무도 고요한 메아리로 돌아오는데..

그의 삶은 너무도 팍팍하게 계속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곧, 420투쟁이 다가옵니다.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이 길바닥에 침낭을 베고 눕겠지요.

그리나, 그를 만나고 온 지금

저는 왜이리 막막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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