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이야기]

장애인21명의 아버지] 이것이 가정? 이것은 시설!

  • 2012.08.21 01: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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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남(21명기억못해).gif
안녕하세요? 발바닥행동 름달효정입니다. 
비가 추적 내리고, 마음은 바쁘고, 분노를 누르는 용기는 쉬 생기지 않는 월요일 저녁입니다. 으히 
이미 몇 차례 보낸 적 있는 원주 사랑의집 장씨에 관한 사건입니다. 
궁금해하실 것 같고, 혹 잊으셨을까봐 소상한 내용으로 환기 시키기.
장례비를 모으고 있다고 소문내기 용 메일입니다. 

주변에도 널리 널리 알려주세요.  


장애인들의 아버지, 장씨



사랑의 집의 주인인 장씨는 스스로를 
자녀를 숨 걸고랑하는 사람이기에 목사라고 칭하는 인물입니다. 
장진남은 1980년대부터 지적장애인들 데려다가 자신의 친자녀로 출생신고 해왔고, 
이런 자녀는 모두 21명입니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희생과 선행의 천사목사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6월, 한 방송을 통해 그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 훑어보기 클릭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 장씨


그는 본래 '보통의 우리들의 아버지'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위해 단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습니다.

돈을 버는 대신, 방송을 통해 21명의 장애인을 돌보는 선한사람이라고 자신을 홍보하고, 

이런 장애인 자녀를 돌본다며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스스로를 목사라고 부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목사라고 믿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만 듣고 정성을 모아 그의 집에 보내줍니다. 

자녀들의 수급비로 생활비를 마련했고, 

남의 땅을 불법으로 점유해 건물을 짓고, 

시청이나 면사무소를 쫓아다니며 지자체의 돈을 뜯어내 

집 앞까지 근사한 도로를 내고 배수로를 설치했습니다. 


그는 스물한명의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단 한 번도 돈을 벌지 않습니다. 


스물한명이나 되는 그의 자녀들은 잘 지내고 있는가?


장씨의 자녀 중 S씨가 사는 곳은 충주0병원 영안실의 냉동고 입니다. 

무려 10년을 이곳에서 옴짝달싹 못한채, 사망선고도, 장례도 치뤄지지 못한 채 냉동고에서 살고 있지요.

장씨의 다른 자녀 H씨는 그 근처의 원주0병원 영안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12년을 이곳에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아사(굶어죽음) 직전 병원으로 실려왔고, 

곧이어 사망, 각각의 병원 영안실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이 두 분의 아버지 장씨는 단 한 번도 병원에 찾아온 적 없고, 애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나는 모르겠다."고 병원의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사망 한 두 사람 외에 19명 중 4명은 장진남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녀의 구분 없이 머리카락은 모두 밀린 채 2층집에 살고 있는 장진남과는 달리

움막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다른 15명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버지 장씨는 '나는 모른다.'고 말하고만 있지요. 




<자녀의 팔에 장애인이란 문신을 깊이 새겨놓은 장씨>


법 앞에 놓인 과제들.   

위의 <훑어보기>를 클릭하시면 방송의 내용을 살피실 수 있습니다. 

장씨는 21명을 출생신고하여 아버지 행세를 해 왔지만, 사실 상 원주 사랑의 집은 미신고시설의 운영형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방송에서 확인하셨 듯, 감금과 폭력 상황이 감지 되었습니다. 

남녀 관계없이 빡빡 밀린 머리카락, 문신, 상흔, 교육 및 사회적 관계의 단절. 

그러나 출생신고 하나로 묶어 가족 행세를 하고 있는 장씨에게서 

학대상태에 놓인 네 분을 분리시키는 데 쉽지 않은 과정을 밟아야 했습니다. 


방송 직전 장씨와 함께 살던 4인의 장애인분들은 장씨로부터 긴급분리보호되었고, 현재 안정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몇 가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1) 입양 아니고 생계를 위한 인신매매 사람들에게 목사라는 거짓정보를 흘려, 장애아를 둔 가난한 부모들에게 자식 잘 키워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은 가난과 사회적 시선을 이기지 못해 장씨에게 자녀를 맡겼고, 이후 장씨의 협박때문에 자식들의 얼굴을 확인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장씨는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허락조차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친자녀로 출생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이 장애인들을 통해 온갖 후원물품을 챙기고, 수급비를 받아 생활해 왔습니다. 21명의 자녀 중 2명은 냉동고에 10년이 넘도록 방치되어 있고12명은 살아있는지 조차 확인(3명은 타 장애인시설에서 신원확인 됨.)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장씨는 4명의 자녀를 찾겠다고 원주시를 샅샅이 뒤지고 있고30년 만에 장씨의 학대에서 벗어난 4명의 장애인들은 여전히 안전조차 담보하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런 장씨는 아직도 큰소리 치며 지금도 네명의 '내 자식들'을 찾겠다고 

원주시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2) 장애인단체가 유괴범?네분의 긴급분리를 시도했던 6월 20일과 21일,이 날 장애인 네 분을 분리하기 위해 많은 장애인단체의 활동가들이 현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장씨는 이날 이후 50여명의 단체 활동가들과 회원들을 유괴로 고발했고, 현재 경찰 수사중에 있습니다. 장애인 4명의 상황을 보고도 "학대가 아니다." " 직접적으로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찰은 개입하지 않겠다."가 경찰의 입장이었습니다.긴급분리를 요청하는 내내 "위에 물어보겠다."고 뒷짐지고 서있던 게 원주시의 공무원들 입니다. 장씨의 부인은 칼을 들고 경찰과 공무원을 위협하기도 했고, 같은 공간에 장애인 4분이 함께 계셨습니다. 
장씨의 집에 들어가 장애인 네 분을 분리시키는 작업은 신변의 보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에도장씨의 고소고발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 이 싸움에서 지면 4인의 장애인을 장씨에게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3) 의무는 없다? 장씨가 귀찮고, 민간대책위가 귀찮은 원주시청 원주시는 모든 게 귀찮습니다. 지난 6월 29일, 민간대책위는 시청 앞에서 장씨에 대한 처벌과 4인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지요. 이후 7월 5일 원주시의 주민생활지원국장이 나와 직접 공동대책위를 만들어 지휘하겠다더니,이게 뭔일. 한 달 반이나 회의를 진행했는데, 국장이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그리고 지난 8월 9일, 주민지원과장. "장씨가 전화를 걸어 무슨 근거로 대책위를 만들었냐고 물었다. 근거가 없었고, 한 개인을 위해 민관대책위를 만드는 것에 공무원들 사이 이견이 많아 해체했다."민관공동대책위인데, 민간과는 마치 대책위가 존재하는 양 눈가리기식 회의를 진행하고,뒤에서는 대책반을 해체해 버린 것입니다. 원주시는 민관공동대책위 구성을 내걸어, 해결의지가 있는 척, 민간이 언론을 활용하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결국 원주시는 대책위로 면피 삼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지난 8월 6일, 장씨에게 분리 된 장**씨가 직장암 3기 인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당장 진단과 수술이 필요한데, 원주시는 장**씨의 병원비 지불을 약속하는 공문 한 장 병원에 발송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원주시는 아무런 공문서도 남기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렸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긴급예산을 세우는 것도 아니라,민간 자원을 알.아.보.겠.다. 고 말합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기약없고, 계획도 없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죽음. 이제 따뜻한 곳으로.. 



<s씨의 사망원인은 아사, 지난 10년 동안 영안실에 방치되어 있었고, 

방송을 본 그의 가족들이 찾아왔다.> 


S씨와 H씨는 무려 10여년이 넘도록 영안실 냉동고에 유기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따뜻한 곳으로 보내드려야 하지만, 

원주시는 방법이 없다는 답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방송 이 후 S씨는 친가족을 찾았습니다. 장진남을 알아보고 찾아온 가족입니다. 

S의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장애를 갖은 아이를 낳으면, 다 애미의 잘못이라고 온 가족이 손가락질 받던 시절이었어요. 

너무 가난했고,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돌봐줄 사람도 없이 방안에 혼자 두는 게 가여워, 친정에 보냈어요.. 
사는게 팍팍해 제대로 얼굴 보러 가진 못했지만, 
종종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의 안부를 물었지. 
늘 잘 지낸다고 이야기 해줬거든.. 그런데.."

애를 찾으러 친정에 갔는데 없는거예요. 
"좋은 목사님한테 맡겼으니, 잊고 살거라." 친정엄마가 S를 어떻게 키우겠냐고.. 
장목사한테 데려다 줬다고.. 찾아 나섰지. 
만날 수 가 없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름을 바꿔 출생신고를 다시 했으니, 찾을 수가 없었지..

30년만에 소식을 듣게 된거예요. 그런데 병원에서 그 지경으로 만나다니.. 
상상이나 했겠어요? 

꿈에 나와서 엄마 엄마, 하다가 '이제 가야할 시간이예요.'하면서 
급히 버스를 타고 휘 떠나곤 했었는데.. 
내 자식이 그렇게 있을 줄, 꿈에나 상상 했겠어요? 

삼십년만에 만났는데, 죽은 자식을 안아야하는 것도 속이 터지는데.. 
그렇게 병원에 있는 걸 알면서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내 자식 저러고 있는데, 먹을 걸 어떻게 목에 넘기나.. 
다 내 탓이지.. - 충주 G병원 안치실 S씨의 어머니 이야기.  

서류 상 S씨의 친권자는 여전히 장씨입니다. 
현재 "원주사랑의집 사건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가 꾸려져 대응하고 있으나, 
장례는 커녕 찾아오지도 않던 장씨는, 친권을 주장하며 본래 가족들에게 시신을 양도하지 않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S씨의 어머니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속이 타들어가지만, S의 어머니는 말합니다. 
"H도 같이 데리고 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는 그 아이도 제 형제라고 생각하며 살았을텐데.. 
S곁에 분향소를 둬야 우리 아들 보러갈 때 H한테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고, 꽃이라도 가져다 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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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사건으로 가정의 울타리가 얼마나 높은지,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살아가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과 인간에 대한 예의 vs 법, 그 괴리가 얼마나 큰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개념 없음에 매일 매일 놀라게 됩니다. 


+ 바램

그럼에도, 

네 분의 장애인은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고, 

두 분의 장애인은 제대로 된 죽음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이 여섯분을 포함한 스물한명은 장씨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액숀!!

무개념 원주시는 무개념 장씨가 진짜 무섭나 봅니다. 

우리도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보여줘야겠습니다. 


1) 원주시에 전화걸어 욕 한 바탕 해주시고(주민지원과장 또는 국장을 찾아주세요!!!흐흐), 

2) 트윗(@hopewonju)이나 펫북 홈피에 쌍두문자 포함, 욕도 시펄시펄 넣어주시고.. 

3) 장례비도 조금씩 모아주세요..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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