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는 위험하니, 장애인들은 수용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랑”, “꽃”, 혹은 “자비”처럼 시설에는 온갖 아름다운 수식어들이 붙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혹은 시설 이름들을 접하다 보면, ‘탈시설’의 가치에 대해 헷갈릴 지경입니다.

  • 2018.05.28 21: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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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는 위험하니, 장애인들은 수용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랑”, “꽃”, 혹은 “자비”처럼 시설에는 온갖 아름다운 수식어들이 붙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혹은 시설 이름들을 접하다 보면, ‘탈시설’의 가치에 대해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시설에서 나오신 거의 모든 분들은, 자신이 거주했던 시설을 “지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설에서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장애인들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박탈하려고 할 때, 20년, 30년, 혹은 그 이상 동안 시설에서 거주하셨던 분들은, 탈시설의 필요성을 증언하십니다.

오늘, 또 다른 당사자의 목소리를 벗님들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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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희선입니다. 저는 남양주에 있는 ‘신애원’이라는 개인운영신고시설에서 23년을 살다가, 2017년 10월에 탈시설하여 지금은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체험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시설에서 지냈던 일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두려움이 앞서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시설에서의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저에게 나오는 수급비와 장애연금은 구경도 할 수 없었고,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고작 4만원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 4만원도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모두 갈취해가서 23년을 시설에서 거주하였지만, 단 한 푼도 모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부모님이 신발이라도 사주라고 보내주신 돈은 구경도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적이 많았습니다. 부모님께 알리려고 했지만, 그러면 엄청 혼나고 맞을까, 그런 두려운 마음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는 자립을 하고 싶었지만, 그건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시설에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를 도와주는 친구들은 함께 거주하는 발달장애인들이었습니다. 가끔 저를 도와주던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없어서 실례를 하게 되면, 그날은 각목으로 엉덩이가 피가 터지도록 맞았고, 너무 아파서 밤새 울면서 지낸 날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김포센터 체험홈에서 지내면서 자립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지금도 그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들은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자유롭게 나와 살 수 있도록, 탈시설 정착금을 지원해주고, 탈시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또한 저는 탈시설 후 활동보조 시간이 적기 때문에, 밤 10시가 되면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은 퇴근을 합니다. 그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하고, 혹시 시설에서처럼 실수를 할까 봐, 혹은 배라도 아플까 봐 밀려오는 걱정들로, 다음날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출근할 때까지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더 이상 두려운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자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활동보조 24시간을 보장해주세요! 감사합니다.

2018. 5. 23 김희선


23년간 거주했지만, 그의 통장은 텅텅비어있을 뿐이다.

항상 현장에서 강하게 투쟁하는, 그리고 절대 웃음을 잃지 않는 희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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