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장애인과 배우지 못한 장애인의 벗,

  • 2016.04.12 14: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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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장애인과 배우지 못한 장애인의 벗,
고 이종각선생님을 기리며..

지난 주 목요일(4월 7일), 우리는 슬픔으로 이종각선생님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분은 정말 ‘키다리 아저씨’였어요.
자기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장하고 살아가도록 돕는 사람,
바로 평원재단의 이사장이자, 우리들의 벗이었습니다.

사실,
발바닥이 그동안 만나야 했던 사회복지법인의 이사장들은
대부분 비리나 인권침해로 감옥에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세대가 법인을 ‘물려받음’으로써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요.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할 때 만난 수십명의 법인운영자들 또한,
자기가 얼마나 장애인을 위해 ‘헌신’했는지,
그러니 잔말 말고 자기 말만 들으라는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참, 비참했지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복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그런데,
세상은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종각선생님은 평원재단의 이사장으로 “평원재”를 운영했는데,
평원재는 말 그대로 “평평한 들판의 집”이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곳 평원재는,
비리 시설에서 자립을 선언하고 뛰쳐나와 마로니에공원에 무작정 노숙했던 8명의 동지들이, 시설에서 기어서 도망쳐 나온 애경언니 같은 사람이,
시설직원의 비웃음과 구박을 견디며 나온 남옥언니 같은 사람이,
시설외의 곳에선 살아본 적 없어 두려움만 있었던 미경언니 같은 사람이,
이십년 넘게 공장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던 명학형님 같은 사람이,
자립을 너무너무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제도권 밖 사람들이,
그야말로 쉬고 준비하고, 다시금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이종각선생님은 이런 평원재를 서울 명륜동에 건축하고,
평원재에 사는 사람들이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할 때까지, 모든 비용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누가 평원재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지 않았고,
오직,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평원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자치의 공간으로 평원재를 운영했습니다.

수십년 학교 한번 못간 장애인들이
이제야 교육받고 사회관계를 맺겠다고 다니는 장애인야간학교,
학생 한명 한명에게 장학금을 주던 평원재단.
이종각 선생님은 자유로운 삶을 찾은 탈시설 한 사람들의,
이제야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된 장애인학생들의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자신은 다 당신들에게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자기를 절대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셨던, 그러면서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분...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함께 했으면 좋았으련만,
이종각선생님은 병마와 싸우다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잊지 않을께요. 기억할께요.
당신은 아름다운 우리들의 벗이었습니다.
당신의 정신과 실천은 우리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함께하지 못하지만 당신의 뜻으로 함께하겠습니다.
이종각선생님, 편히 쉬세요.


탈시설 장애인과 배우지 못한 장애인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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