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이야기]

<형제복지원 사건>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다라'를 떠돌았다.

  • 2013.07.12 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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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변방연극제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내용으로 한 연극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기사 글이 있어 여기에 올려 봅니다.

비마이너 : http://www.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5602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

 

“내가 안 끌려갔다면 다른 사람이 끌려갔을 것”
11월에 연극 ‘유리바다’로 완성작 올라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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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실험다큐극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작·연출 장지연)가 올해 변방연극제 참가작으로 지난 4일부터 사흘간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됐다. ⓒ변방연극제 최성욱

똑, 똑, 똑. 물방울 듣는 소리가 들린다.
청량하다. 맑다.
아니다, 이 소리는 물고문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다.
그 누군가에겐 그랬다. 적어도 이 극장 안에 앉아 있는 한 남자에게는.

“형제복지원 안에서는 구타와 고문이 매일같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구타가 얼마나, 어떻게 일어났느냐, 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수시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극히 일부의 그림만 넣을 수 있었습니다.”

무대 앞에 앉아 있던 그가 일어나 객석을 향해 말한다. 그의 등 뒤에 설치된 스크린 위로 폭력의 기억이 지나간다. 소리는 과거로 스며든다.

부산 형제복지원에 대한 증언의 기록을 담은 『살아남은 아이』 저자 한종선 씨가 연극 무대에 섰다. 형제복지원은 1980년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12년 동안 513명의 원생이 죽어나간 전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소였다. 한종선 씨는 1984년 9살의 나이로 누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다가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지면서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실험다큐극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작·연출 장지연)는 올해 변방연극제 참가작으로 지난 4일부터 사흘간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 올랐다. 이번 연극은 하나의 완성된 극이기 전에 ‘과정을 드러내는 연극’이었다.

연출을 맡은 장지연 씨는 “11월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담은 연극 <유리바다>를 올릴 예정”이라면서 “11월에 연극으로 올라가면 한종선 씨의 모습은 많이 희석될 것 같아서 그전에 한 씨에 대해 드러내고자 이번 연극을 올리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연극은 세 개의 층이 뒤섞여 있다. 하나는 '유리바다' 속 드라마이며, 또 하나는 한종선 씨와 장지연 씨가 대담을 나누는 영상,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대 위에 오른 한종선 씨 그 자체이다.

한 씨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기 위해 국회 앞 1인 시위를 하던 중 우연히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규찬 교수를 만나 이에 대한 기억을 글과 그림으로 적어나가게 됐고 그것을 지난해 11월 책 『살아남은 아이』로 출간했다.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저자와의 대화와 토론회를 진행했으며, 이번에는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게 됐다.

책 속에 활자로 누워 있던 글자는 더는 침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증언의 기록을 이야기로 엮어냈고 배우들은 그 이야기를 자신의 몸에 새겼다. 한 씨가 기억에서 걷어 올린 언어의 뼈에 사람들은 살을 붙였다.

장 씨가 한 씨에게 묻는다. “종선 씨는 언제부터 울지 않으셨어요?”

“누나가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을까, 그 생각하면 감정이 북받쳐 올라요. 슬퍼진다는 건, 내가 희망이 없어질 때 슬퍼지고 격해지는 거니깐. 지금은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니깐 밝게 웃으려고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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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오른 한종선 씨의 모습 ⓒ변방연극제 최성욱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그때, 한 씨도 형제복지원에 감금되어 있던 아버지, 누나와 헤어졌다. 한 씨가 성인이 되어 마주한 아버지와 누나의 현실은 처참했다. 형제복지원에서 겪은 고문의 충격으로 아버지와 누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현재도 정신병원에 있다.

한 씨가 액자와 거북이를 들고 무대 위에 선다.

“여기 액자와 거북이가 있습니다. 26년 전, 저한테 가족사진이 있었는데 큰 누나와 어머니가 빠진 상태네요. 거북이는 얼마 전 아버지 병원 면회 갔을 때 38년 만에 처음 받은 선물입니다. (생략)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가슴 속에는 이렇게 액자가 있습니다. 그 가족들에게 액자를 돌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연극의 마지막 즈음, 한 씨가 만든 종이 장미꽃이 형제복지원의 또 다른 피해자에게 전해진다. 붉은 장미꽃을 두 손에 받아든 배우가 말한다. “종선 씨에게 받은 이 꽃을 그분께 전해 드릴게요.”

한 씨는 자신의 삶에 세 번의 바람이 불었다고 고백했다. 첫 번째는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할 때 한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되어준 사람, 전규찬 교수. 두 번째는 한겨울에 따뜻한 바람이 되어준 이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세 번째는 올봄, ‘연극 만들자’며 따뜻한 봄바람처럼 다가온 사람들.

이 꽃은 그 바람 품고 자라난 꽃이다. 그 꽃을 스스로 피워낸 한 씨가 이젠 자신과 똑같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에게 전한다. 한 씨의 아픔이 다 나았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그 시간 속에 감금되어 살아가는 이에게 전하는 연대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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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연극제 최성욱


“만약 그곳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혹시 꿈이 있으셨나요?”

장 씨의 물음에 한 씨는 답한다. “만약은 없어요. 내가 안 끌려갔으면 다른 사람이 끌려갔겠죠.”

국가는 시설을 만들었고, 시설이 생기니 누군가는 그곳에 들어가야 했다. 그게 한 씨였고, 그의 누나, 아버지였다. 누구나 가난했던 시절, 어떤 이는 가난을 이겨내어 오늘날 중산층이 됐고 어떤 이는 정신병원에 있다. 나의 삶, 저편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


우연히 잔인하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나 아닌 당신의 희생으로 내가 살아남은 건 아닐까. 그가 무대 위에서 떨리는 손으로 드러내는 삶의 파편이 한 개인의 역사가 아닌 이 사회 모두의 역사로 확장되어야 하는 까닭은 어쩌면, 그렇게 스쳐 지난 고통의 화살받이가 당신이었기에. 나 아닌,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연극을 본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박숙경 교수는 최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피해자들에게는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어렸을 때 겪었던 아픔이 이들 삶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모든 사회생활의 생채기가 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이 문제는 지금 방법이 있다, 없다 또는 시효가 지났다, 아니다가 아니라 여전히 겪고 있는 아픔들, 무관심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책임 등 이런 지점이 문제라 생각한다”라며 “연극은 그 과정과 사람들을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박 교수는 “‘연극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 의미 있었다”라면서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봐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결과를 중심으로만 바라보니 사람을 수단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자 시설 문제를 풀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형제복지원을 비롯해 시설문제에 대한 공소시효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지적했다. 현재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한 문제들을 처벌하려 해도 공소시효 만료로 현행법 안에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없다.

박 교수는 “시설 안에서는 피해자가 호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나중에 고발하게 되는데 그동안 시효는 이미 지나가 버린다”라면서 “상황에 따라 사건 시효 배제, 시효 연장 적용 등을 고려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지적장애의 특성이나 시설 감금으로 피해자가 호소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 있을 땐 공소시효를 따지기 어려운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26년 전 사건을 누군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라며 “세월이 흘러 공소시효도 지나고 가해자도 잊은 듯하나, 이것은 잊히지 않은 이야기고 현재도 유효한 이야기”라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현재성에 대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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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작·연출 장지연) ⓒ변방연극제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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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작·연출 장지연) ⓒ변방연극제 최성욱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target=_blank>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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