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
발행일 : 2016.5.5(목) 2호
발행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발바닥 회원님들께>
지난 10년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탈시설운동’이 전개되어 온 과정을 회원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발바닥행동이 왜 만들어졌는지, 탈시설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매주 1회 메일과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추후에 이 내용을 다듬어 발바닥 10년사 자료로 묶을 예정입니다. 언제든지 회원님들이 의견을 주시면, 향후 자료제작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의견주실 곳 : footact@hanmail.net(김정하 개인메일) 담당 김정하 010-3252-9463
<보내주세요>
발바닥 10년의 역사를 자료로 묶을 예정입니다. 여기에 회원님들의 한마디가 빠질 수 없겠지요? 발바닥행동에게 보내는 회원님들의 응원의 메시지를 5월 한달 동안 받습니다. 문자, 카톡,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 각종 방법으로 보내주세요. 사진 한 장으로 마음을 전해주셔도 좋아요!
마감 : 2016년 5월 31일
보낼 곳 : footact@hanmail.net(김정하개인메일), 담당 김정하 010-3252-9463,
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3)
– 2002년, 정부의 시설양성화정책이 가져온 비극
“시민들은 값싼 동정은 보냈지만 함께 분노하지 않았다”
2001년 강원도 정선의 믿음의 집은,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그 당시 전국 어디에나 있었던 미신고시설들의 양상은 유사했다. 시설장들은 정부지원도 못 받는 “무허가시설”(과거에는 허가제였다)이여서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이유로 사람들의 후원을 호소했다.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진 장애인의 모습에 동정을 보냈고, 부러 정부지원을 못 받는 미신고시설에 후원금과 물품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민들은 동정은 하되, 그들이 지금 당장 처해 있는 비인간적 처우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함께 분노하진 않았다.
“정부의 양성화정책이 부른 비극, 지원금을 받기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미신고시설”
그러다가 2002년 5월 9일, 19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었던 임마누엘복음수양관에서 불이나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다시 한번 미신고시설의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서 비닐하우스에 장애인을 재우거나 폭행, 감금 등의 사건들이 또다시 폭로되었다. 보건복지부는 결국 사고 발생 직후인 5월 22일 ‘미신고 복지시설 관리종합대책’을 내놓았는데 그것의 핵심은 미신고시설을 지원하여 ‘양성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일명 ‘조건부 신고제도’로 3년 이내에 국가가 요구하는 복지시설 신고기준을 충족해서 신고 시설로 전환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들 시설에 대해 개·보수 비용과 인력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개·보수 비용은 시설당 최대 4억원이었고, 시설장은 몇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자격을 주었으며, 직원이름은 허위로 기재되어 있어도 감독하지 못했다. 정부는 유예기간이 끝나는 2005년 7월 말까지 ‘기준’을 충족시키는 신고시설로 전환하지 못하면 퇴출조치 한다고 했지만, 2016년인 지금도 미신고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당시 양성화정책이 발표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미신고 시설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95년 293개소에 불과했던 미신고시설은 2001년 637개소, 2004년엔 1,096개소로 계속 늘어났다.
솔잎원은 지인언어치료원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에 치료실을 차려놓고 장애아동을 모집한 후, 입소가 결정되면 부모를 속여 아이들을 근처의 낡은 옥탑방으로 옮겨 가둬둔 후, 치료원에서는 또 다른 아이들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다. 원장은 옥탑방의 문을 밖에서 잠근 후 장애아동들만 둔채 늘 외출하였으며, 제보를 받고 사전 조사를 하기위해 자원활동가라며 방문한 우리에게 자신이 얼마나 장애아동들을 위해 '헌신'하는지 열변을 토했다. 다뜯긴 벽에 붙은 신문지와 쇠창살. 원장은 신문을 붙인 건 아이들의 언어치료를 위해서라 했고, 쇠창살을 두들기며 이것은 음악치료라 했다.
“시설의 늪에 빠진 무능한 정부”
당시 발바닥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전(前)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활동했던 활동가들과 인권단체들은 <조건부시설공대위>를 결성했다. (결성과정은 추후에 다시 소개하겠다) 2002년 정부의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이 발표됐을 당시에만 해도, 어느 인권단체이건 이렇다 할 성명서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몇 단체에 미신고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진정과 상담이 이어지고, 이러한 사건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조건부시설공대위>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양성화정책의 결과로 오히려 미신고시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에도 정부는 이에 대해 대책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정부였다. 아니면 무능하거나. 정부는 미신고시설에 대해서 ‘옥과 석’을 가려서 옥은 양성화하고 석은 폐쇄시키겠다고 했지만, 옥과 석을 가리기 위한 조사활동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 석을 발견하더라도 그들은 나름의 이유를 들어(종교공동체이다, 자발적 공동생활이다 등) 저항했기 때문에 폐쇄시키지 못했고, 정부지원을 받으려는 시설장들이 모여 들여 실력행사까지 하면서 정부는 그야말로 시설의 늪에 빠진 셈이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안에 살게 되는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었다”
당시, 조건부시설공대위는 각종 인권사건들을 대응하기에 눈코뜰새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인권침해사건들이 폭로되는데도 정부의 지원정책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을 양성화하기 위해서 정부는 로또기금과 기업의 기금을 모았고, 당시 1천억원이 넘는 돈이 시설양성화 기금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시설운영자에게 돈을 주지 말고, 당사자의 자립을 위해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살 집이 없어서 들어간 이들에겐 전세자금을 지원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겐 돌봄을 위한 비용으로(당시 장애계에선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신고된 시설을 운영하는 복지법인에서도 끊임없는 비리와 족벌운영, 사유화와 인권침해로 얼룩져 있는 복지현실이었다. 여기에 더해 1천개가 넘는 미신고시설을 돈을 퍼주며 양성화 시킨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안에 살게 되는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었다.
언론보도 : 과거의 사건들은 기사가 너무 많다. 아래 기사는 최근까지도 미신고시설이 존재하고 그때의 문제가 고스란히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