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이야기]

박현-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 2009.12.21 13: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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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09년 12월 16일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 때 박현씨가 작성한 음성군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박현 / 음성 꽃동네

박수광 음성군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음성 꽃동네에서 생활하고 있는 27살의 박현입니다. 저는 뇌병변 1급 장애인으로 음성 꽃동네에서 생활한지 14년 정도 되었습니다. 시설안의 무의미한 생활보다는 내안의 삶을 찾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꼭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시설에 오기 전까지 저는 주로 집에 누워서만 생활을 했었어요. 휠체어도 없고 해서 나간다는 건 생각도 못했지요. 꽃동네 오게 된 건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낮에는 동네 아주머니가 봐주시고 그러셨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다보니까 알아보셨나봅니다. 저는 집에만 있다가 나가는 게 좋아서 그래서 꽃동네 오는 걸 좋아했었어요. 그때는 ‘꽃동네가 시설이라는.. 이 안에서만 먹고 자야한다는 건’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저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했어요. 그런데 와보니 달랐습니다. 처음 꽃동네에 와서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그래서 많이 울고..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그 당시는 가족이 있으면 꽃동네에 들어오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가족이 꽃동네 앞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았지요. 저도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해서 꽃동네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면회 온 ‘엄마’를 ‘이모’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엄마는 1년에 두어 번 정도만 오셨어요. 자주 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규제가 강해졌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자에서 직원으로 바뀌고 나서 오후 4시이후에는 면회도 되지 않습니다.  

수없이 꽃동네를 나가 다른 친구들처럼 살고 싶었지만 엄마 속 썩이고 싶지 않고 시설에 계신 분들에게도 죄송해서 힘든 내색 않고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참다가 막상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모두가 반대를 했습니다.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막상 반대에 부딪치니 많이 서러웠습니다. 

매일 똑같이 먹고 자고하는 생활을 이제는 더 이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동안은 저 같은 사람들이 나가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나 저와 같은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지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일도 하고 활동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함께 생활하던 저랑 같은 장애가 있는 형이 이곳을 나가서 자립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저도 나가서 자립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성친구도 사귀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형을 따라 시설에서 나가 같이 살려고 했는데 그 형이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저도 나갈 수 없게되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어요. 꽃동네에 와서 한글을 배우게 됐어요. 그때는 학교에 가고 싶긴 했는데, 아무도 갈 수 있다 이야기 해 주지 않아 갈 수가 없었죠. 갈 수 있는 곳인지도 몰랐어요. 지금은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학교과정까지 마치게 되었어요. 검정고시 같은 경우도 내가 시설장한테 “저 공부 좀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어봐서 준비할 수 있었어요. 당시 대학교수가 꽃동네에서 일을 해 개강 전에는 1주일에 5일, 개강 후에는 1주일에 3~4일씩 7개월 반 동안 함께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그 교수님이 바빠지시면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혼자 준비하려니 쉽지 않더라구요. 결국 포기했죠.

14년 동안 살아온 이곳을 나가 스스로 살 생각을 하면 저 역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우선 살 곳도 필요하고 활동보조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첫째로 집인 거 같아요. 저 같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 3~4명 정도가 함께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곳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서 못다한 공부도 하고 쉽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장애인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돕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왜 변호사냐고요? 나처럼 시설에서만 갇혀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지금 저를 도와주고 있는 변호사처럼...

박수광 음성 군수님!
많이 어렵겠지만 우리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공부도 하고 싶고, 변호사도 되고 싶습니다. 어려운 꿈이지만 저도 꿈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시설장애인이 아닌 박현,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시설에서 나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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