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운동에 대해 탈시설정책위원회 임성택변호사님이 한겨레신문에 기고하였습니다.
2009년 12월 18일자 여론면(27쪽) 기고글을 올립니다. 함께 공유해요.
인터넷 한겨레 참조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94262.html
<어느 장애인들의 탈시설 독립선언>
임성택(탈시설정책위원회 소송기획팀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지성)
1급 장애인 진명(가명)씨는 음성 꽃동네에서 19년을 살았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감옥에 간 뒤, 돌보던 아주머니가 그를 꽃동네로 보냈다고 한다. 꽃동네에서 먹을 것 걱정 없이 살던 그가 이제 그곳을 나오겠다고 한다. 김포의 복지시설에서 18년을 지낸 영현(가명)씨도 시설을 나오겠다고 날 찾아왔다. 전동휠체어를 끌고 김포에서 남대문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른 사람이 1시간이면 올 거리를 세 시간이 걸려 찾아왔는데도 얼굴이 무척 밝다.
두 사람 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시설을 나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 설렌다는 그들. 시내를 활보하고, 혼자서 시장도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러 가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들. 이들이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신청을 관할 행정청에 냈다. 사회복지사업법이 인정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한 것이다.
사회복지시설(거주시설)은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곳이다. 그런데 각종 비리와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났다. 가두고 폭행하는 일부터 강제노동이나 심지어 강제불임시술까지, 숱한 사건이 있었다. 힘든 이들을 볼모로 운영자의 배를 채우는 일이 허다했다. 이런 사건은 복지시설을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일깨웠고, 우리 사회의 관심도 여기에만 집중됐다.
하지만 문제는 ‘나쁜 복지시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장애인을, 노인을, 버림받은 어린이를 지역사회와 분리해서 단체생활을 하도록 하고, 오로지 보호의 대상으로만 살게 하는 건 바람직한가? 그러한 삶이 과연 보편적·정상적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인이나 노인, 어린이가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면서 친구도 사귀고 재활이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선진국에서는 오래전에 시설 중심의 복지정책을 폐기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생활을 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시설 중심의 정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예산을 핑계로 시설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나, 시설에 지원하는 예산이면 자립생활 지원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게 선진국 경험이며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다.
복지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종종 군대나 감옥에 있는 거 같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군대라도, 아무리 좋은 감옥이라도 수년, 수십년을 지내긴 힘들다. 군대나 감옥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시설에 들어간 이들은 아무런 기약도 없이 10년, 20년, 30년을 거기서 살아야 한다. 그들을 시골구석에 격리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동네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니고, 노인이 함께 사는 공동가정을 이웃으로 만나기를 희망한다.
시설에서 먹여주는 밥 먹고, 주는 옷 입고 살면 그만이었던 그들이, 그래서 아무런 꿈도 가지지 않았던 그들이 시설을 나오기로 마음먹은 뒤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진명씨는 인터넷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고, 영현씨는 전파상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이제는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는 뜻이다. 복지시설에 수용된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겠다는 선언은 한국 사회복지사에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꿈을 이루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