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이야기]

윤국진-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처럼 인정받고 대접받으며 살고 싶어요

  • 2009.12.21 14: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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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09년 12월 16일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 때 윤국진씨가 작성한 음성군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처럼  인정받고 대접받으며 살고 싶어요”


윤국진 / 음성 꽃동네


박수광 음성군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음성꽃동네에서 19년간 생활하고 있는 윤국진입니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람답게 사는 삶을 꿈꾸고 짧게나마 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꼭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아버지 어머니 사이가 안좋아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고, 아버지 사업이 잘 안되서 감방에 들어가있는 동안 아는 아줌마가 우리 형제를 돌봐주셨습니다. 어느날 아줌마가 저에게 “꽃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가보지 않겠느냐? 그리고 네가 안가면 나중에 동생들이 힘들어지지 않겠느냐?” 라고 하시더군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그때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됐거든요. 늘 집에서만 생활해야 했고, 어머니 아버지는 집에 안 계셨으니까요. 시설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애덕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꽃동네 와서 한 삼일은 밤마다 울었어요. 애덕의 집에서는 한달여 생활하다가 희망의 집에 오게 됐습니다. 

시설에서 살면서 좀 지나고 적응이 되니 ‘나 같은 사람은 살기 좋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제법 말도 잘하고, 꽃동네에 봉사 오는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직원들과도 잘 지낼 수 있었다는 것도 그랬고. 능력도 없는 내가 먹을 것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곳. 이 정도면 만족하고 살 수 있다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2004년도에 모 장애인단체를 통해 자립생활도 알게 되었고, 교육도 받았습니다.  여름캠프를 가게 되었는데.. 충격이었어요. 다른 장애인이 지역에서 이렇게 살고 있구나. 나는 내가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거구나.. 내가 잘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아까웠습니다. 그리고 한 켠에서 배신감도 밀려오더라고요. 아무도 나에게 시설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것도 못한 채 10년이 넘는 세월을 이 곳에서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다 같이 꽃동네에서 살던 형이 1년 만에 시설에서 나가게 됐습니다. 내가 내고 싶지만 낼 수 없었던 그 용기가, 그 선택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몇 년여 시간을 보내다가 체험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시설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집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잠시가 아닌 오랜 기간 머무르며 살 수 있는 공간.. 무작정 집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최소 500만원 이상의 보증금이 필요한데 당시 통장에는 8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에게 돈을 부탁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동생들은 그런 제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시설에서 나오는 것을 반대하였고 결국 다시 시설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꽃동네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착찹했던 건 자립생활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책임져야하는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어요. 우선 나가려면 집도 필요하고 활동보조도 필요하고, 또 돈도 필요하고.. 이 문제들이 걸리지 않았다면 더 빨리 나올 수 있었을 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이런 상담을 어디에 해야할지 막막했어요. 돈도 없는데... 

앞으로 시설에서 나와 돈을 벌고 싶어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걸 고민해 봤어요. 요즘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마음 맞는 친구들 3~4명 정도가 함께 살면서 조그맣게 쇼핑몰 혹은 컴퓨터와 관련된 무언가를 하면 좀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고생은 좀 하겠지만 자리가 잡히고 나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동안 외출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장애인들이 자립생활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내가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느 자립생활 교육을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시설에 있는 장애인은 개 돼지라고 표현을 하더라고요. 나는 사람인데 왜 개 돼지가 되어야 하는지.. 나의 삶이 그렇게 취급되어지는 것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시설에서 나와 살고 싶어도 집과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박수광 음수군수님!!
우리도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처럼 인정받고 대접받으며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시설에서 나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09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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