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발바닥 문혁입니다. 2016년도 첫인사 입니다.
- 2016.01.19 19:00:32
- https://www.footact.org/post/452
안녕하세요. 발바닥 문혁입니다! 2015년 7월, 활동하게 된 첫 인사 이후 처음 뵙습니다. 아마 2016년에는 ‘아라디오’가 잠시 쉬고, 신입활동가인 ‘재환과 혁’이 2016년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아라디오’ 뒤를 잇는 만큼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직 회원 분들께 보낼 편지이름이나 성격도 명확하지 않아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예쁘게 봐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첫 인사의 부담을 멋대로 제 이야기로 풀까합니다. 다음 주 재환의 글로 2016년, 발바닥 첫 활동이야기가 전해 질 거라 믿으며 일을 뒤로 미뤄요. 많은 기대 바랍니다.
제가 장애 쪽 활동을 하게 된 것이 2013년도인데요. 활동을 시작하기 전 ‘장애인과 겪었던 일들이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보는 것이 거창하지만 저에게는 ‘화두’입니다. 그 전까지는 정말 제 눈과 귀에 장애관련 일은 정말 투명한, 보이지 않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강박스러울 정도로 활동 전 장애인과 겪었던 일을 떠올리곤 하는데 거의 없어요. 오늘 제가 드릴 이야기는 그 많지 않은 기억 중 하나입니다.
퇴근길에 종종 지하철 1호선 구일역에서 내려 안양천을 건너 광명에 있는 집으로 15분정도 걷는 귀가 길을 택할 때가 있습니다. 신도림역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집 앞 정거장에서 내리거나, 차 끌고 집으로 가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구일역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은 시간은 걸리지만 나름 재미가 있어 가끔씩 일부러 향합니다.
안양천 작은 다리를 건너며 보는 서부간선도로와 안양천 뚝방 길 자체의 멋을 즐기러 걷는데, 길 따라 늘어진 가로등과 차 불빛이 빨갛고 노란 것이 오묘하게 어울리는 맛이 있습니다. 안양천 가를 걷는, 운동하는 사람들 구경도 재미납니다. 80~90년대 만해도 똥물이었던 안양천이 이제는 제법 깨끗해져 오리도 살고 두루미도 가끔 보이기도 합니다.
그 중 최고는 바로 구일역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토스트입니다. 요새는 이삭토스트, 빵집 샌드위치 맛있는 게 많은데, 저는 이 토스트가 좋습니다. 불판에 마가린을 발라 식빵을 굽고, 따로 여러 야채를 섞어 만든 계란부침을 올린 뒤 그 위로 설탕 한가득, 케첩과 머스터드 소스를 듬뿍 뿌려 빵을 포개 만든, 고소하면서 달달하면서 새콤한, 불량스러울 정도로 맛있는 그 토스트가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그 맛이 너무 당기면 집으로 가는 길을 구일역으로 잡지요.
이 토스트를 먹으면 맛도 맛이지만 대학생활도 눈앞에 펼쳐집니다. 다름 아니라 대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토스트를 팔던 청각장애인부부가 있었거든요. 대학교 정문으로 나오면 그 쪽에 주욱 들어선 포장마차 거리가 있는데, 순대곱창, 떡볶이, 순대, 튀김 등 여러 요깃거리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포장마차 중 최고 맛 집은 그 토스트 가게였습니다.
새내기 때 선배들한테 소개 받은 뒤로 너무 맛있어 돈 없는 남 학우들끼리 점심식사로, 후배들에게 진짜 맛있다며 거들먹거리며 토스트를 살 때, 술 잔득 먹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을 때, 항상 그 집을 찾았습니다. 토스트를 살 때는 간단했습니다. 일단 말을 크게 합니다. 그리고 손짓을 섞지요. 토스트를 가리킨 뒤 “이 토스트 4개 주세요!” 손가락 4개를 폅니다. 그러면 부부는 “토스트 4개? 알겠어!” 똑같이 입모양과 손짓을 반복하고 확인을 하면 돈을 내 놓았지요. 그러면 가게 아저씨가 능숙한 솜씨로 불판위에 마가린을 바르고 계란을 탁탁 깨서 믹서기로 야채를 넣고 갈아서 탁탁 불판위에 계란을 부칩니다. 그 뒤로 던지듯이 식빵을 내려놓고 빵과 계란을 뒤집는데, 그 솜씨가 일품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채 1분도 안 걸렸지요. 맛도 맛이지만 부부의 토스트 만드는 광경이 일품이어서 처음 볼 땐 입이 떡 벌어져 숨죽이고 구경했습니다. 천원이란 싼 가격에 맛도 좋고 구경거리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요, 아저씨 아주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사이좋음, 따뜻함은 덤 이었습니다. 그 집을 찾으면 항상 즐거웠습니다. 그 뒤로 한창 ‘이삭토스트’를 비롯한 토스트 판매 체인점들이 들어서고 인기를 끌었지만, 그 집만 못 했어요. 인기는 덜 해졌을지라도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그 가게를 찾았습니다.
토스트 가게는 포장마차 거리를 강제로 없애면서 사라졌습니다. 포장마차 옆 땅에 대학병원이 들어서자 학교는 길거리 공간이 좁고 경관을 헤친다며 포장마차를 없앴습니다. 학생들의 반응도 시큰둥했어요. 많은 학생들의 생각에 포장마차 이모님과 형, 아저씨들은 ‘불법, 세금을 안내는, 돈 많이 버는, 사실은 그랜저를 비롯한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되었지요.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쉽게요.
그 중 떡볶이를 파시던 이모님 한 분만 근처에 가게를 따로 내셨고, 나머지 분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청각장애인부부도 마찬가지지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몰라도 그 분들은 저에게 좋은 추억이고 따뜻함으로 남아있습니다. 항상 감사하지요.
구일역에서 내려 야채토스트를 삽니다. 서서 먹는 것보다 포장을 해서 걸으면서 먹습니다. 두꺼운 토스트를 반 접어 종이컵에 넣고, 안양천 다리를 건넙니다. 강바람 맞으며, 가로등 불을 바라보며 사람구경, 오리구경, 운 좋은 날은 두루미 구경하며, 학창시절 기억도 떠올리며 그렇게 집으로 향합니다.
회원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새해를 보내고 계신지요. 이번년도에는 발바닥에서 편지에 시 나눔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했던 아이가 쓴 시를 오려붙입니다. 다음에 찾아뵐게요, 건강하세요!!
아버지의 병환
우리 아버지가
어제 풀 지러 갔다.
풀을 묶을 때 벌벌 떨렸다고 한다.
풀을 다 묶고 나서
지고 오다가
성춘네 집 언덕 위에 쉬다가
일어서는데
뒤에 있는 독맹이에 받혀서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풀하고 구불어 내려 와서 도랑 바닥에 떨어졌다.
짐도 등따리에 지고 있었다.
웬 사람이 뛰어 와서
아버지를 일받았다.
앉아서 헐떡헐떡 하며
숨도 오래 있다 쉬고 했다 한다.
내가 거기 가서
그 높은 곳을 쳐다보고 울었다.
(69년 6월10일 안동 대곡분교 3학년 김규필, <<일하는 아이들>>, 청년사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