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이야기]

미신고시설 인권실태나눔, 잘 마무리했습니다.

  • 2011.05.06 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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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발바닥행동 름달효정입니다.

 

2010년 미신고시설 인권실태 나눔이

많은 분들의 관심하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난 2월 보고대회에서는,  미신고시설 조사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졌고,

이번 5월 3일 인권실태 나눔은 조사에 참여한 각 분야의 활동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보니, 

못다한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세시간 반의 진행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었지요.

 

이 날 발제를 맡아주신 많은 분들과

참여해 주신 분들의 애정과 관심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미신고시설 인권실태조사가 시작된 지 이제 1년이 지났습니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미온한 대응은

조사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시설의 운영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시설들에 대한 행정적 처리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미신고시설 유예기간이 끝난 지금,

미신고시설 및 개인운영시설, 지방자치단체 별로 개인운영신고시설에 대한

운영비 지원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막무가내 미신고시설의 개인운영시설로의 양성화와 

이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 논의는 분명 견재되어야 합니다.  

 

--

 

남옥언니의 글을 붙입니다.

이날, 짧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 논의를 계속 이끌어가야 하는 이유를

선명하게 제시해 주었습니다.

 

저는 김남옥입니다. 올해로 48세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 살다가 19살 때, 나이가 많아져서 중계동에 있는 재활원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활원에서는 외출같은 것이 자유로워서 좋았던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갖거나 그런 것은 아니였는데,

한 장애인 남성이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왔습니다.

그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친한 친구로 지냈는데,

 어느 날 나에게 나가서 같이 살자고 하더라고요.

재활원에서 산 지 10 년만에 난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단 생각하나로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도저히 같이 살 형편도 안됐고, 갈 곳도 없었습니다.

 한 지인의 도움으로 혼자서 생활할만한 조그마한 방 한 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는게 너무 막막해서 다시 재활원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재활원에서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같이 나왔던 남자는 더 좋은데로 보내준다고 하면서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이 화성 OO의 집이었습니다. 이렇게 들어간 화성의 시설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OO의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방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장판도 없었지요.

조그만 방에서 3-4명 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방하나, 부엌하나에 교회하나 있는 것이 전부였지요.

 하루 종일 했던 일은 먹고, 자고 , 먹고, 자고 예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곳에서 밖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십여년을 살다가 건물을 새로 지어서 들어간 곳이 화성의 시설이었습니다.

 

건물을 다 지은 후 2년이 다 되갈 쯤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예배하는 것도, 먹을 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없는 것,

한 방에서 십수명이 함께 생활하는 것도 참을 수 있었지만 시설에 살면서 갑갑함을 이길 수 가 없었습니다.

20년동안 시설에 살면서 나는 단체로 나가는 것 외에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미신고시설에 살면서 저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시설에 살다가 세 번 정도 시설에서 도망 나온 적이 있습니다.

같이 살던 장애인과 둘이서 나왔지만, 얼마 못가서 잡히고 말았습니다.

나는 시설에서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늘 주눅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런 소망도 없어졌습니다.

사실 이 미신고 시설 조사가 진행되고, 화성 시설이 폐쇄된다고 했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제 여기가 아니라 새로운 곳에 나가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조사원들이 밖에 나가서 살 수 있다고 확인하는 말들이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시설이 폐쇄됐고, 나는 다른 시설에 가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지겹기는 했지만,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닌데, 천주교 시설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난 여기가 싫다. 나는 기독교 시설로 보내달라"고 이야기 했지요. 지금은 또 다른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40년을 계속 시설에서 살고 있는 처지지요.

 

나는 이제 시설의 생활이 싫습니다.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어제 시설에서 나와서 오늘 받을 발제비를 땡겨서 쇼핑을 다녔습니다.

내가 제일 먹고 싶은 건 라면이었습니다. 티셔츠도 사고, 청바지도 하나 샀습니다.

앞으로 시설에서 나와서 서울에서 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나의 미래는 어제처럼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시설에 살고 있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자유를 같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사진제공 :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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