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귀래사랑의집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 사건은 목숨걸고 장애인을 사랑해서 '목사'라는 자가 운영하는 미인가시설에서 거주인들의 머리카락을 박박 깍고 손에는 이름과 시설의 전화번호 등으로 문신하는 등의 학대를 일삼은 사건입니다. 시설 원장이자 자칭 '목사'인 장진남은 살아있는 자를 폭행하고 학대한 것도 모자라, 시설에 수용되었다가 사망한 자를 장례도 치르지 않았지요. 그 장진남이 3년 6월의 형을 마치고 출.소.했답니다. 2016년 6월 23일, 끊임없는 시설문제의 대안으로 탈시설-자립생활정책 수립을 요구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강원 팀장의 말을 친구들께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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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비극은 1960년대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 21명을 친자로 등록해서, ‘천사 아버지’라며 칭송을 받았습니다. 장애인을 목숨 바쳐 사랑해서 자신이 목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알려진 것과 달랐습니다. 그 사랑의 집이라던 곳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천사 아버지라는 사람은 장례조차 치러주지 않아 10년째, 12년째 병원 냉동고에 시신이 방치돼 있었고, 2012년 당시 구출된 4명 이외에 14명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구출된 네 분의 몸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는가 하면 손가락이 꺾인채로 굳어져 있고 박박 깍은 머리에는 온통 상처 투성이에 이빨은 다 썩어서 빠져있고, 온 몸에는 상처와 흉터가 가득 했습니다.
방송을 보고 찾게 된 새로운 피해자가 온몸으로 증언한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집에서는 학대가 밥먹듯 일어났고, 도망을 치다 잡혀오면 물고문에 손톱을 뽑고, 바늘로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 잔인한 보복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죽어나간 어린 장애아동들이 피해자가 직접 본 사람만 6명에 달했지만 가해자는 이들의 시신을 들고나가 어디론가 내다 버렸습니다.
우리는 경찰조차 외면했던 이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네 분의 장애인을 구출했고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고작 3년 6개월의 징역이 선고되고 바로 오늘, 가해자 장진남이 복역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3년 6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장진남과 살아남은 네 분의 길고 긴 부자 지간의 악연을 법적으로 완전히 단절 시켰고, 양팔에 새겨진 낙인의 문신을 지웠습니다. 개명 신청을 해서 원래의 이름을 찾았고 상처로 얼룩진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구출 당시직장암 말기 상태였던 장성아씨가 6개월 만에 돌아가셨고, 작년에는 가장 오랜 시간 악마의 손아귀에서 고통을 받았던 장성민씨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다짐했었습니다. 결코, 우리 손으로 장례를 치렀던, 병원 냉동고에 방치돼 있었던 성희씨와 성광씨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어렵게 찾은 자유를 누릴 여유도 없이 돌아가신 성아씨와 평생을 지옥같은 곳에서 고통받은 성민형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리고 요구했었습니다. 국가가 대책을 세워라, 국가가 시설문제를 해결해라, 국가가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탈시설 대책을 마련하라고 수도 없이 싸우고 외쳐 왔습니다.
그러나 3년 6월이 지난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를 돌아봅니다.
해바라기와 인강재단, 마리스타, 그리고 최근의 남원 평화의 집 까지,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시설에서 일상적으로 학대와 인권침해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여전히 사회와 분리되어 시설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고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요구하는 우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주에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는 1998년에 있었던 장항 수심원이라는 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을 재 조명하면서 당시 시설이 폐쇄 되면서 그때의 피해자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하는 매우 의미있는 내용이 방송 됐었습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그때 시설에서 학대당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지금도 시설을 전전하며 집에 가고 싶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친구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시설이라는 집단생활과 통제된 환경은 그 자체로도 인권침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학대와 인권침해는 탈 시설과 자립생활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이는 아무리 대책을 마련하는 척 떠들어 보았자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제2 제3 제4 제5의 도가니 사건을 겪어야 합니까, 국가는 왜 답을 알면서도 여전히 장애인을 사회와 격리해서 가둬 놓고 있는 것입니까, 언제 이 비극은 끝이 나는 것입니까? 국가는 반드시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배제와 분리, 이 죽음의 패러다임을 반드시 깨야 합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자립생활 대책 마련하라
-내집에서 살고 싶다 탈시설 대책 마련하라!

그 사건은 목숨걸고 장애인을 사랑해서 '목사'라는 자가 운영하는 미인가시설에서 거주인들의 머리카락을 박박 깍고 손에는 이름과 시설의 전화번호 등으로 문신하는 등의 학대를 일삼은 사건입니다. 시설 원장이자 자칭 '목사'인 장진남은 살아있는 자를 폭행하고 학대한 것도 모자라, 시설에 수용되었다가 사망한 자를 장례도 치르지 않았지요. 그 장진남이 3년 6월의 형을 마치고 출.소.했답니다. 2016년 6월 23일, 끊임없는 시설문제의 대안으로 탈시설-자립생활정책 수립을 요구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강원 팀장의 말을 친구들께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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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비극은 1960년대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 21명을 친자로 등록해서, ‘천사 아버지’라며 칭송을 받았습니다. 장애인을 목숨 바쳐 사랑해서 자신이 목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알려진 것과 달랐습니다. 그 사랑의 집이라던 곳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천사 아버지라는 사람은 장례조차 치러주지 않아 10년째, 12년째 병원 냉동고에 시신이 방치돼 있었고, 2012년 당시 구출된 4명 이외에 14명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구출된 네 분의 몸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는가 하면 손가락이 꺾인채로 굳어져 있고 박박 깍은 머리에는 온통 상처 투성이에 이빨은 다 썩어서 빠져있고, 온 몸에는 상처와 흉터가 가득 했습니다.
방송을 보고 찾게 된 새로운 피해자가 온몸으로 증언한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집에서는 학대가 밥먹듯 일어났고, 도망을 치다 잡혀오면 물고문에 손톱을 뽑고, 바늘로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 잔인한 보복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죽어나간 어린 장애아동들이 피해자가 직접 본 사람만 6명에 달했지만 가해자는 이들의 시신을 들고나가 어디론가 내다 버렸습니다.
우리는 경찰조차 외면했던 이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네 분의 장애인을 구출했고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고작 3년 6개월의 징역이 선고되고 바로 오늘, 가해자 장진남이 복역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3년 6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장진남과 살아남은 네 분의 길고 긴 부자 지간의 악연을 법적으로 완전히 단절 시켰고, 양팔에 새겨진 낙인의 문신을 지웠습니다. 개명 신청을 해서 원래의 이름을 찾았고 상처로 얼룩진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구출 당시직장암 말기 상태였던 장성아씨가 6개월 만에 돌아가셨고, 작년에는 가장 오랜 시간 악마의 손아귀에서 고통을 받았던 장성민씨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다짐했었습니다. 결코, 우리 손으로 장례를 치렀던, 병원 냉동고에 방치돼 있었던 성희씨와 성광씨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어렵게 찾은 자유를 누릴 여유도 없이 돌아가신 성아씨와 평생을 지옥같은 곳에서 고통받은 성민형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리고 요구했었습니다. 국가가 대책을 세워라, 국가가 시설문제를 해결해라, 국가가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탈시설 대책을 마련하라고 수도 없이 싸우고 외쳐 왔습니다.
그러나 3년 6월이 지난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를 돌아봅니다.
해바라기와 인강재단, 마리스타, 그리고 최근의 남원 평화의 집 까지,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시설에서 일상적으로 학대와 인권침해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여전히 사회와 분리되어 시설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고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요구하는 우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주에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는 1998년에 있었던 장항 수심원이라는 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을 재 조명하면서 당시 시설이 폐쇄 되면서 그때의 피해자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하는 매우 의미있는 내용이 방송 됐었습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그때 시설에서 학대당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지금도 시설을 전전하며 집에 가고 싶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친구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시설이라는 집단생활과 통제된 환경은 그 자체로도 인권침해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학대와 인권침해는 탈 시설과 자립생활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이는 아무리 대책을 마련하는 척 떠들어 보았자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제2 제3 제4 제5의 도가니 사건을 겪어야 합니까, 국가는 왜 답을 알면서도 여전히 장애인을 사회와 격리해서 가둬 놓고 있는 것입니까, 언제 이 비극은 끝이 나는 것입니까? 국가는 반드시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배제와 분리, 이 죽음의 패러다임을 반드시 깨야 합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자립생활 대책 마련하라
-내집에서 살고 싶다 탈시설 대책 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