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사회를 바라는 가족 증언대회] 내 아이가 동네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 소용희

  • 2024.04.25 08: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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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사회를 바라는 가족 증언대회] 


내 아이가 동네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 소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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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찾아듣는 부모활동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 광명지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나야인권센터에서 광명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을 듣게 되었죠. 교육이 정말 좋아서 그 후부터 인권교육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공부를 계속 하면서 나야인권센터의 워크숍도 함께하게 됐어요. 당시 발달장애가 있는 강사분들은 없었어요. 반면에 탈시설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발달장애가 있는 분들이 지역사회로 나오시다 보니 발달장애와 관련한 인권교육 의뢰가 많아졌죠.

 

익숙하지 않아서, 경험하지 못해서

 

탈시설당사자를 만나 교육을 해야하는데, 발달장애인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활동가가 별로 없더라고요.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같이 교육에 참여하게 됐죠. 그 때부터 탈시설 당사자를 만나는 교육활동을 하고 있어요. 제일 처음에 만난 분들은 향유의 집에서 탈시설하신 분들이었어요.
사실 탈시설하신 분들이 활동지원사 하고만 같이 있는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한쪽에 있었어요. 탈시설당사자들도 지역사회 나와서 생활하시는 게 익숙하지 않았을 거에요. 경험하지 못한 거죠. 그런데 점차 그분들이 IL센터 활동도 하고 공공일자리도 하시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달라졌죠. 탈시설당사자분들을 지역사회에서 뵈었을 때 표정이 많이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발달장애인을 지원할 때는 당사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지원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당사자들이 사전에 정보를 알 수가 없는데, 그냥 이거 해이렇게 하고 마음을 살펴봐야 해요. 이분이 지금 기분이 좋은가 하는 것들을 살펴봐야하는 거죠. 당사자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고 지금 잠깐이라도 나가서 바람 쐬는게 좋을까 동네 한 바퀴 돌고 마트도 한번 가볼까 제안하는 거죠. 표현이 어려우신 분들은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달장애인을 동네에서 오래 만나고 자주 만나다보면 발달장애인이 아닌 동네주민으로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게 될 것 같아요.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만나는 부모할동가

 

최근에는 시설에 계신 분들을 만나서 성인권교육을 해요. 특히 발달장애인은 무성적존재이거나 성을 몰랐으면 하는 사회적 시선이 이 분들의 성적행동을 문제행동으로 바라보고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우리가 성교육을 받아야하는 이유는 자신의 성적권리를 보장받고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함이라 생각하는데 그 가치가 장애인에게는 동일하게 적용되는지는 의문이죠. 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일은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자기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주변 지원인과 꾸준한 교육을 통해 다양한 관계와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움 요청할 수 있는 지원인이 있다는 것도 알려야하죠. 발달장애인에게 성교육의 제공은 인권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해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기를

 

아들은 36살이에요. 광명시 통틀어 하나 있는 통합학급을 다녔는데, 중학교 때 따돌림이 심했어요. 아들이 아침마다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고 해서 물어보니 친구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는 전학도 가고 특성화고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면서라도 함께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들이 졸업할 때만해도 졸업 이후에 할 수 있는 것은 복지관이용 이외에 거의 아무것도 없었죠. 학교에서 복지관으로 잠깐 이동해서 다녀오는 제과제빵이나 바리스타 두 개 뿐이었어요. 개인별 지원 프로그램이 없었죠.

 

너무나 수 없이 참았던 일들

 

아들이 엄마가 걱정할까봐 그 때는 말 안했다면서 얼마전에야 말하더군요. 학교 다닐 당시에 너무 힘들어서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대요. 옥상에 딱 갔는데 어떤 친구가 느낌을 알았는지 자기를 따라와서 그러지 말라고 했대요. 그 친구 때문에 뛰어내리지 않고 내려왔대요. 지금이라도 그 친구를 찾아가서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참았던 일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교육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학창시절 거의 100%는 다 괴롭힘, 왕따, 소외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이 있었어요.

발달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주저앉아버렸죠

 

졸업하고 난 이후에도 직장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고용공단에 한번 가보니, 병원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일과 대형마트에서 공병정리와 마트비품 정리하는 일자리 두 개가 있었어요. 아들은 00마트에서 하루 8시간을 20살부터 27살까지, 더울 때는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는 추운 데서 일했어요.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았던 환경이었고, 집에 오면 10시가 넘기 일쑤니 과로가 쌓였어요. 자기 일이 끝나도 다른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면 그것도 다하면서도 왜 늦었냐고 물으면 일이 안 끝나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이 힘들어했지만 워낙 일자리가 없으니 저도 그냥 모른 척하면서 출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병이 났어요. 친구이자 애인같던 외할아버지에게 위안을 받던 아들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실어증이 왔어요. 다리에 힘도 못 쓰고 주저앉아버렸죠.

 

간절했던 일자리

 

병원에 가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하던 마트에서는 병가, 휴가 다 당겨서 좀 쉬고 다시 나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편의를 봐준 거죠. 그래도 저는 아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아도 되고 마트에서 해주는 말이 위안이 되어서 다시 마트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딸이 일침을 날렸죠.

엄마가 그렇게 하니, 오빠가 싫어도 싫다는 말을 못한다, 힘들어도 그만둔다는 소리를 당연히 못한다. 오빠한테 물어봤냐라고요.

뜨끔해서 그제야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다니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곧바로 마트를 그만두고 한달쯤 쉬었을 거에요. 이후에 우연히 다른 사람이 올린 정보를 보고 지금 다니는 베어베터라는 회사를 알게 됐어요. 상시로 이력서를 보내놓고 기다리다가 연락이 오면 면접을 보곤 하는 곳이었어요.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와서 아들에게 보여줬죠.

 

정년 퇴직할 때까지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면접을 보고 온 아들은 좋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회사는 발달장애를 이해하는 직원을 위주로 뽑고, 일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만들어내면서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만들어내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아들은 꽃꽂이하거나 화관을 만들어서 배송하는 꽃팀에서는 꽃의 순서를 외우기 어려웠고, 까페팀에서는 사람이 확 몰리는 시간에 적응을 못했어요. 그 다음 제과제빵팀으로 옮겨서 일을 하다가 회사에 편의점 사업이 생기면서 지금은 편의점 일을 계속 하고 있어요. 적절하게 휴게시간도 가지면서 하루 4시간씩 일하니까 월급이 반으로 줄긴 했지만 너무 재미있대요. 물건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채워넣는 일들이 좋아서 정년 퇴직할 때까지 하고 싶대요. 매니저님도 계시니까 아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해갈 수 있어요.


저축해서 독립하자~

 

아주 오래전부터 아들이 나랑 끝까지 살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늦으면 늦을수록 자립을 하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 겪는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지원체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아들이 혼자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자립해서 혼자 살까 계속 고민했어요. 아들이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이제 독립을 할 거니, 이룸통장 활용해서 저축하면 독립을 하자고 얘기했어요. 그러다 아들의 회사 동료를 통해 충현복지관 주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립을 준비했어요.

 

자연스럽게 자립하기

 

처음에 자립을 15일 체험하는 기간이 있었어요. 가서 생활해보고 싫으면 다시 집에 와도 좋고, 거기서 이것 저것 경험하고 싶으면 있어도 된다고 했어요. 그룹홈에서도 아들이 들어오는 게 좋다고 얘기했고, 아들도 한번 생활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29세부터는 네 명이서 2명씩 한 방에 사는 그룹홈에 살았어요. 아들이 자폐성 장애가 있는 분하고 같이 살았어요. 그 분은 자기 패턴대로 해야하잖아요. 이런 부분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장애당사자분들이 생활하시니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요. 다른홈에 계셨던 분은 서로 잔소리를 하다보니 뭔가 삐그덕대다가 결국 나는 싫다라면서 원가족으로 되돌아가셨어요. 그룹홈이 반자립, 자립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반자립에서는 직원이 오가다가 자립이 되면 직원이 빠지더라고요. 자립이 되면 스스로 생활하고 직원이 계속 소통은 해주고 오가는 거죠.

 

그룹홈에서 반자립, 자립하기까지 7년이 걸렸어요

 

그룹홈에서 반자립, 자립하기까지 7년이 걸렸어요. 19살때는 계란 프라이 하나 하는 것도 어려워했어요. 두부 부치는 것도 어려워했는데 지금은 김밥 재료 사다 놓으면 계란도 부쳐서 김밥을 맛있게 싸요. 아들이 김밥 쌌다고 사진 찍어 보낸 것 보고 동네방네 자랑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음식하는 걸 좋아하고, 간을 저보다 잘 맞춰요. 처음에는 수건 개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세탁기를 돌려본다든가 빨래를 한다든가 기본적인 것들을 계속 조금씩 할 수 있게 했어요. 그룹홈에서도 꾸준히 자립생활을 연습해왔던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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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더 단단해지고 편안해지는 중

 

예전에 제 마음에는 지하 100m 정도의 우울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인권공부 하면서 장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런 저런 공부도 하다 보니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제 목소리를 내게 되니까 하림이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지금이 훨씬 보기 좋다고 해요.

아들과 8살 차이 나는 딸은 어마무시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오빠가 장애인인 걸 아는데 왜 나를 낳았냐고 물었어요. “나는 어떻게 할 거냐, 엄마 아빠가 먼저 죽을 건데 어떻게 나한테 부담이 안가게 한다는 거냐, 이게 다 나한테 부담이다라면서 얘기를 막 퍼부을 때가 있었어요. 인권공부를 하고 나서 아이에게 오빠는 주택이 나오면 자립할거고, 복지관이나 여러 연계망을 해줄 준비를 해놨다고 구체적으로 선을 정해서 딸이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얘기했어요. 지금은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다른 발달장애인들을 만나고 있죠. 아마 본인도 좀 마음이 편안해졌을 거에요. 지금은 오빠는 내가 신경 쓸테니까 이제 엄마는 엄마인생을 사셔라고 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죠. 남자친구 생기면 오빠 불러내서 셋이 밥도 먹고 별 보러 산꼭대기까지 가고 그래요. 너무 고맙죠.


안전하고 완벽하기보다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길

 

부모들은 장애가 있는 자녀한테 안전하고 완벽한 환경을 물려주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재산을 관리해주는 제도를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제가 돈 관리에 조금 더 많이 관여를 했다면 지금은 통장 만들어주고 체크카드 사용하게 해요. 자기 카드 사용하고 펑크 나면 다시 송금해서 조금 더 이렇게 보내주고 하다가 생활비 통장을 만들었어요. 이제는 본인이 돈을 모아둔 통장에서 모자란 통장에 송금해요. 통장관리 하는데 16년이 걸렸죠. 실은 이룸통장 활용해서 두 배가 된 자기 돈으로 자립한 거에요. 보증금 정도 모이니까 그룹홈을 나가고 싶다고 한 거죠.

 

자존감이 달라져요

 

집을 얻어보자 했지만, 임대주택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원래는 그룹홈에서 더 기다리려고 했는데 같이 사는 분이랑 계속 부딪히는 일이 생겼어요. 그 때 나가고 싶다고 얘기 하더라고요. 지금은 00구에 월세를 내면서 살고 있어요. 4시간 근무를 마치고 나면 운동을 해요.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해보니 30대 이상 사람들의 성인병발병률이 비장애인에 비해 높아서 직장에서 지원하는 체육센터에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출석율을 채우면 회비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동을 권장하고 있어요. 3회 운동을 하고 복지관 핸드볼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과격하지 않나 걱정했는데 하루 가서 보니 운동이 되겠더라고요.

광명에서는 지역사회 장애인식개선 교육 사업을 3년째 발달장애인과 협업해서 하고 있는데 거기서 아들도 강사로 활동해요. 반응이 정말 좋은데, 강사들도 학교에 다니면서 학교 다닐 때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 또 이런 도움을 받았을 때 좋았다, 나 지금은 이렇게 잘 산다고 얘기하면서 자존감이 달라져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나와서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해서 효과가 너무 좋은 거에요.

 

1인 발달장애인 가구에 대한 고려

 

어려움도 있었어요. 혼자 지역사회에서 서비스를 알아보고 신청하는 것이 어렵죠. 동사무소 가는 것부터 제가 따라다니면서 했어요. 지역사회에서 자립한 분들을 지원하는 주거돌봄서비스가 있는데, 아들이 살고 있는 00구 지역 담당기관은 인강원이에요. 사실 충현에서 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도 있는데, 관할 지역을 넘나들긴 어렵죠. 00구에는 1인가구가 40%가 넘어서 1인가구 지원센터도 있어요. 아들이 혼자 가서 신청했는데 접수하는 과정에서 대답도 제대로 안해줬대요. 그 외에 발달장애인지원센터나 피플퍼스트센터는 원래 알았던 기관들인데, 개인적인 활동이 많아서 현재는 피플퍼스트 정회원으로 등록만 하고 활동을 못하고 있어요. 아들은 당분간 혼자 지내고 싶어서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활동지원사가 저녁에 들려서 별 이상이 없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가고, 집에 일찍 오면 저녁에 한강변에도 같이 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자립했을 때, 동료가 있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소중해요

 

작년에 대항로사람들 행사할 때 왔다가 보다센터랑 연결이 됐나봐요. 보다센터에서 활동을 해보면서 너무 좋다고 한 달에 한 번식 자립 모임을 하고 있어요. 자립에 관한 영상도 찍는다고 해요. 당사자들의 자립에 대한 생각들을 잘 풀어내면 너무 좋겠어요. 오히려 완전히 자립했을 때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거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자기만의 일을 하고, 나와 같은 또래가 있는 곳이나 동료가 있는 곳에 가서 함께 그 시간 지내는 게 이게 정말 중요한 거죠. 사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 지금도 그룹홈을 나왔지만 멤버들하고 거의 매일 전화통화 하며 연락하고 관계맺고 있더라구요.

 

지원자들이 잘할 수 있다고 꾸준히 다양하게 알려주면 할 수 있어요.

 

부모도 나이가 들잖아요. 자립홈이나 그룹홈에 있는 분들의 상황을 보면, 이제 부모님들이 그냥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신대요. 후원을 많이 해서 애를 시설에서 살게 해주면 좋겠다 하시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왜 탈시설 못하지? 생각해보면, 복지관이나 그룹홈이나 거주 시설에 계신 지원 인력들이 탈시설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전제로 지원하면 탈시설이 어렵죠.

탈시설이 왜 필요한가 탈시설이 왜 당연한 권리인가를 부모님들이나 당사자에게도 꾸준히 알려드리고 지원해주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남편도 그렇게 장애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들이 자립할 때 너무 힘들어했어요. “혼자 사는 거 너무 위험하지 않아? ” 라고 할 때 저도 흔들렸어요. 그런 아버지가 하림아 너네 집에 CCTV 좀 달아놓을까? 엄마, 아빠가 불안할 때 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 순종적인 아들이 단번에 싫다더라고요. 주민센터 갔더니 1인가구에게 지원되는 홈캠과 잠금 장치가 있더라고요. 내가 없을 때 문이 열리면 휴대폰에 안내가 돼요. 그런데 그건 발달장애인은 해당이 안되고 여성만 해당된대요. 여성 뿐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면 좋겠어요.

 

어떤 지원을 필요로 하는가 고민하는 단체들이 서로 연결되길

 

사실 아들이 혼자 산다는 건 걱정되죠. 비장애 자녀를 두고 죽을 때도 걱정되잖아요. 그러니까 지역에서 혼자 나와서 살아도 걱정 되고요, 시설에다가 살게 하고 죽어도 엄청 걱정되죠. 그래서 좀더 더 빨리 자립을 준비하면서 더 안전한 지원체계를 요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지원체계들이 따로 국밥이 아니라 서로 연결이 좀 되어 있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사는 발달장애인이 어떤 지원을 필요로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거기에 조금 더 생활을 잘하실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는 단체가 많아지면 훨씬 더 안심이 되죠. 신탁처럼 돈을 관리해주고 매달 일정액을 지급해준다면 그 달에 적자가 나거나 누군가에게 뺏겼을지라도 다음달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죠. 그리고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도움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이 꼭 필요합니다. 비장애형제자매에게 일정생활비를 맡겼을 때 그 형제자매가 사는 게 팍팍해지고 내 상황이 어려워지면 많은 것을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체를 커다란 틀로만 보면 너무 막연한가 싶은데 작게 쪼개서 지역별로 보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탈시설, 탈재가, 탈부모 하신 발달장애인분들이 지역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주택이 더 다양화되고 더욱 촘촘하게 지원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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