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서울시탈시설장애인주거대책촉구 1인시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날씨는 따뜻하지만 바람이 찬 날입니다.
중증장애인들이 탈시설장애인의 주거권을 요구하며
일인시위를 진행한지도 벌써 12일째입니다.
오늘은 서울시탈시설장애인당사자모임 "보금자리"의 박현씨가 1인시위를 진행했습니다.
- 서울시 체험홈 입주 자격 확대 및 물량 확대하라!!
- 서울시 자립생활가정 입주 자격 및 물량 확대하라!!
- 중증장애인 전세주택제공 사업 물량 중 탈시설장애인 할당하라!!
- 체험홈, 자립생활가정 입주 대상자 서비스 지원 확대하라!!
< 박원순시장님게 보내는 편지 >
안녕하세요 박원순 서울 시장님
저는 올 1월 부터 서울시민이 되어 열심히 자립생활 하고 있는
뇌병변1급 장애인 박현이라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충북 보은 이고요.
그곳에서 13살까지 가족들과 생활하다가 형편이 어려워서 시설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을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생활하다보니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시설은 너무 무의미한 생활이었고 세상에 나가서 살 수 있는 정보와 교육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먹고 자고 산책 하는게 전부였습니다. 마치 울타리 없는 동물원 같이 말이죠.
사회 복지 시설이라는 이름이 뭐하는 곳인지 아시죠.
그런 모임의 생활이 반복 되다가 한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2년간 주거복지 사업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2년간 집을 구해줘서 자립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시장님께 글을 올리는 이유는
앞으로 1년 후에 이집을 비워 줘야 하는데 그 후로는 오갈 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아 놓은 돈도 몇 푼 않되고요.
제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서 시장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시장님께서는 한평생 을 소외되고 어렵고 힘든 약자 편에 서서
싸우고 이끌어 주고 하셨던 삶을 잘 압니다.
저에게도 이러한 행운이 올수 있기를 소원 합니다.
2011년 12월 7일
박 현 올림
< 삶의 이야기 >
몰랐어요. 이곳에서만 먹고 자야한다는걸..
시설에 오기 전까지 저는 주로 집에 누워서만 생활을 했었어요.
휠체어도 없고 해서 나간다는 건 생각도 못했지요. 꽃동네 오게 된 건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낮에는 동네 아주머니가 봐주시고 그러셨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다보니까 알아보셨나봐요.
저는 집에만 있다가 나가는 게 좋아서 그래서 꽃동네 오는 걸 좋아했었어요.
그때는 ‘꽃동네가 시설이라는.. 이 안에서만 먹고 자야한다는 건’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저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했어요. 그런데 와보니 다른 곳이더라고요.
처음 꽃동네에 와서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그래서 많이 울고.. 그렇게 지냈어요.
참다참다 이야기했지만..
수없이 꽃동네를 나가 다른 친구들처럼 살고 싶었지만
엄마 속 썩이고 싶지 않고 시설에 계신 분들에게도 죄송해서
힘든 내색 않고 조용히 숨죽이고 살았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참다가 막상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모두가 반대하더라고요.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막상 반대에 부딪치니 그때의 서러움이란..
매일 똑같은 생활, 이젠 그만!
매일 똑같이 먹고 자고하는 생활을 이제는 더 이상하고 싶지 않아요.
그동안은 저 같은 사람들이 나가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시설에서 나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랐고..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나 저와 같은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지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일도 하고 활동도 하는 모습을 봤어요.
또 함께 생활하던 저랑 같은 장애가 있는 형이
이곳을 나가서 자립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을 보고..
저도 나가서 자립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성친구도 사귀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어요.
공부하고 싶지만, 혼자는 힘들더라고요.
집에 있을 때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어요.
한글도 시설에 와서 배웠어요.
그때는 학교에 가고 싶긴 했는데,
아무도 갈 수 있다 이야기 해 주지 않아 갈 수가 없었죠.
갈 수 있는 곳인지도 몰랐고..
지금은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학교과정까지 마치게 되었어요.
검정고시도 내가 시설장한테
“저 공부 좀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봐서 준비할 수 있었어요.
당시 대학교수가 꽃동네에서 일을 해 개강 전에는 1주일에 5일,
개강 후에는 1주일에 3~4일씩 7개월 반 동안 함께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그 교수님이 바빠지시면서 도움은 초등학교 검정고시까지만이었어요.
그 이후 혼자 준비하려니 쉽지 않더라구요. 결국 포기했죠.
변호사의 꿈
자립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첫째로 집인 거 같아요.
저 같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 3~4명 정도가 함께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곳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서 못다 한 공부도 하고 쉽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장애인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돕는 일도 하고 싶어요.
왜 변호사냐고요? 나처럼 시설에서만 갇혀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지금 저를 도와주고 있는 변호사처럼...공부도 하고 싶고, 변호사도 되고 싶어요.
어려운 꿈이지만 저도 꿈을 갖고 살고 싶어요.
시설장애인이 아닌 박현,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 박현으로..